고해의 고달픈 중생에게 사기치지 말라

이법철 | 입력 : 2017/10/16 [12:20]

부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세상을 고해(苦海)라고 정의하여 설법 하였다. 부처님의 설법의 핵심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구절인 “마음에 공포가 없어야 (無有恐怖)하고 마음에 전도된 몽상에서 벗어나는 것(遠離顚倒夢想)”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부지기수의 남녀들이 전도몽상과 공포에 이용당하여 돈을 바치고 후회하며 죽어간다. 참된 수행자는 고해의 고달픈 중생에게 위안의 말씀은 줄지언정 돈을 받아내기 위해 사기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호구지책(糊口之策)에 일부 고달픈 중생들은 크던 작던 죄업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중생들은 끝없이 돈에 대한 탐욕을 부린다. 또 인간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한 공포(恐怖)가 있다. 돈에 대한 탐욕, 공포심 때문에 부지기수의 남녀들은 종교에 귀의하여 승려나 목사, 신부 등에게 위안의 말을 듣고 구원을 받았다고 자위한다. 이러한 중생들의 탐욕과 공포의 심리를 독심술(讀心術)로 간파하는 일부 종교인들은 성현을 들먹이며, 성현의 말씀을 뒤섞은 말로 위안을 주면서, 중생의 탐욕과 불안심리를 이용하여 부당하게 돈을 바치게 한다.

나는 조계종 승려로서 50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다. 일부 사악한 승려들이 중생의 돈을 바치게 하기 위해 중생의 욕망과 공포심의 심리를 이용하여 돈을 바치게 하는 사기수법의 술수를 부리는 것을 목도한 적이 있다. 나는 오직 중생을 위해 사기 술수를 밝히고자 한다.

일부 사악한 승려들이 중생의 돈을 바치게 하는 수법중의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일부 승려들은 산에 제법 큰 바위가 있는 곳에 돌부처를 세운다든가, 아니면 사찰을 지어 광고를 친다. “ 이 절에서 기도하는 중생은 부처님이 한 가지 소원은 이루게 해준다”는 광고이다. 탐욕이 없는 남녀는 그 말에 절대 현혹되지 않는다. 그러나 돈에 대한 탐욕심과 공포심이 많은 남녀는 “한 가지 소원은 이룰 수 있다”는 술수에 사로잡히고 만다.

승려들의 광고에 기만당한 남녀들은 빚을 내서라도 돈을 마련하여 “한 가지 소원을 이루려고 광고의 기도장을 불원천리(不遠千里) 찾아 나선다.”

예컨대 대구 팔공산 갓바위 불상과 남해 보리암, 설악산 봉정암 등 바위가 있는 곳의 불상을 찾아 돈을 바치고 애걸복걸 하는 중생은 부지기수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팔만대장경을 전부 찾아도 부처님은 “한 가지 소원을 이루는 곳은 바위가 있는 곳이다.”라고 설파한 적이 없다. 한 가지 소원을 이루려 바친 돈은 누가 차지하는가? 허망한 광고로 중생을 기만하는 승려들의 호주머니에 들어갈 뿐이다. 그 돈의 결론은 은처승의 처자에게 들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부처님은 “온 우주에 비로자나 법신불(法身佛)이 아니 계신곳이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기도의 대상이 되는 법신불이 특정 바위가 있는 곳의 불상 등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기 일 뿐인 것이다.

바꿔말해 부처님의 영험은 큰 바위가 있는 고요한 곳에도 나투지만, 저자거리 인파 가운데도 부처님의 영험은 나투는 것이다. 대한민국 전국 도처의 사암(寺庵)과 불상은 평등한 기도장이다.

고해의 고달픈 중생은 사기치는 승려가 아닌 불교의 진리와 위안의 애기를 들을 수 있는 참된 수행자를 만나야 한다.

한국사회에 고전으로 전해오는 애기는 불교의 좋은 말씀을 듣고자 어느 유명한 승려들 찾아 나서 설법을 구하다가 1200억의 전재산을 바친 노기(老妓)의 이야기다.

어느 날, 노기(老妓)의 모(某) 여성은 유명한 모(某) 승려를 찾아가 법을 구하였다. 그 승려는 근엄한 수행자의 복색으로 맞으면서 대뜸 이렇게 말했다 한다. “보살님은 살아생전 지은 죄업이 많아 영원히 나올 수 없는 무간지옥(無間地獄)에 떨어질 것이요. 저승사자가 포박하여 데려가려고 곧 들이 닥칠 것이오.”

모 보살은 공포감에 부들부들 떨었다. 한평생 기생 노릇을 하고, 다른 젊은 여자들에게 기생 노릇 하게 하면서 술 팔고 몸 팔아 화대를 챙긴 것읋 후회했다. “해법은 없나요? 제발” 모 승려는 근엄하게 선언하듯 말했다. “전재산을 모두 내가 정해주는 사찰에 바치시오.” 그 다음 내가 염라대왕께 부탁하여 무간지옥행을 면하게 해주겠소.“

마침내 공포에 빠진 그녀는 전재산 1200억원을 바치고 말았다. 모 승려는 공포심을 이용하여 그녀가 한 평생 기생 노릇과 요정에서 활동한 것에 무간지옥행을 선언하고, 해법으로 그동안 치부한 돈을 순식간에 바치게 한 것이다. 타종교에서도 돈을 받고 천당행 티켓을 판매하였다는 것은 고전이다. 분명한 것은 중생의 공포심을 이용하여 큰 돈을 받아내는 것은 모든 종교가 비슷하지 않은가? 새빨간 사기의 혓바닥 농단으로 1200억을 챙긴 그 승려는 또다른 노기(老妓)와 재벌 마누라에게 죽을 때까지 돈을 지원받아 유명하다.

혹자는 성을 내어 이렇게 나에게 반론(反論)할 수 있다.
“방편의 말을 하지 않으면, 누가 보시의 돈을 내겠소? 돈이 창고에 썩어도 자비 보시를 하지 않고 오히려 탐욕으로 돈을 더 벌려고 탐욕을 부리는 중생인데, 그들이 순순히 보시를 하겠소? 거 배부른 소리 하지 마시오.1200억을 받아낸 것은 그녀가 선행을 하게 한 방편일 뿐이요. “

나는 그 반론에 반론한다.
“아무리 호구지책(糊口之策)이 어려워도 무소유의 성현들을 이용하여 중생의 탐욕심과 공포심을 이용하여 부당히 돈을 갈취하는 것은 안 될 일이다. 모든 인간을 살게하는 천지의 조화의 핵심은 인간을 부당히 못살게 하는 생명체에 천벌(天罰)을 줄 것이다.시줏돈 횡령하여 환속한 후 처자와 행복하개 오래사는 자는 나는 본적이 없다. 명백한 사기를 선의의 방편이라는 것도 사기다.”

승려들이 속인 뺨치게 돈에 대한 탐욕으로 중생을 상대로 사기의 술수를 부리는 내면에는 대부분 여성과 이층(二層)을 이루는 인생이다.

승려가 여인과 이층을 이룬 후 아이가 생기면 그 때부터 아이의 어머니는 불같이 성을 내어 “돈을 가져와라. 만약 돈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처자가 있다는 것을 기자회견이라도 해야 겠다.” 공갈협박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아이를 낳은 여인의 돈벌어 오는 머슴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층을 이룬 결과로 처자가 있는 승려의 진심은 성불 보다도 돈을 추구하는 것이다.

나는 예전에 동물의 왕국이라는 동영상을 본적이 있다. 암여우가 굴속에서 새끼들을 돌볼 때 숫여우는 눈, 비를 맞으며 암여우와 새끼들의 먹거리를 위해 사냥에 나서는 애처로운 동물의 왕국을 본적이 있다. 숫여우는 애써 사냥에 성공하면 먹지 않고 입에 물고 암여우에게 바치듯 했다. 어느 날, 숫여우는 사냥길에 강한 상대를 만나 비명횡사를 하고 말았다. 숫여우가 처자의 먹거리를 위한 사냥같이, 사악한 사기의 말을 하고 법당에 불상(佛像)이라도 몰래 팔아 처자에게 건네려는 딱한 승려는 있는 것이다.

끝으로, 참된 수행자의 화두는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하지만 중생의 화두는 돈이다. 돈이 있어야 자신은 물론, 부모를 봉양하고 처자를 부양하는 것이다. 따라서 중생의 인생은 오매불망(寤寐不忘) 돈을 벌기 위해서 진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행자의 복색을 한 일부 승려들도 은처자(隱妻子)를 위해 돈을 벌려고 혈안이다. 승속(僧俗)이 다를게 무언가? 머리가 영리한 은처승은 찾아온 중생을 보면서 독심술(讀心術)로 어떤 탐욕과 어떤 공포가 있는지를 순식간에 간파한다. 그 다음 약사가 약처방하듯 하듯, 심지어 저승의 염라대왕까지 직거래 하는 듯 혓바닥 농단을 하고, 천문학적 돈을 수입 잡는 것이다. 나는 거듭 주장한다. 모든 중생이 반야심경에 나오는 전도몽상에서 벗어나고, 마음에 무유공포(無有恐怖)의 경지를 얻었다면, 절대 기만당해 돈을 바치고 가난뱅이가 되는 일은 없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또 진정한 불교신도는 사기당해 돈을 갈취당하는 것 보다는 스스로 어려운 사람에게 자비보시를 해야 한다. 나는 거듭 주장한다. 참된 수행자는 고해의 고달픈 중생에게 위안의 말씀은 줄지언정 돈을 받아내기 위해 사기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




이법철(이법철의 논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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