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唐)나라의 절세미녀 양귀비의 최후

이법철 | 입력 : 2020/01/25 [07:29]

 

▲     © 이법철

양귀비(楊貴妃)는 중국 당(唐)제국의 황제 현종(玄宗)이 총애하는 귀비였고, 작급애까지 절세미녀로 칭찬을 받는 중국 4대 미녀중에 한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는 35세 되는 해, 당을 위협하는 안록산(安祿山)의 반란으로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황급히 피난을 가는 중에 대신들과 장병들은 분노하여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현종에 주청(奏請)했다. 반란의 괴수 안록산과 양귀비가 형식상 의모자(義母子)관계이면서 그동안 현종을 기만하며 살을 섞는 사통(私通)하는 사이였다는 근거를 제시하며, 안록산에 반란을 부추기는 원인이 양귀비에 있다고 주장하며 시굽히 처형해야 한다는 주청이었다. 근거는 양귀비 궁의 궁녀들의 증언과 그동안 안록산과의 사랑의 서신왕래 등이 밝혀진 것이다.

따라서 보고와 처형의 추청(奏請)을 받은 현종은 반역자 양귀비를 처형하도록 윤허했다. 양귀비는 좌우 양쪽의 장병들의 손으로 비단끈에 목이 매이 힘껏 잡아당기기 전에 “살려달라” 울부짖었지만, 용서받지 못하고 교살(絞殺)당하고 말았다.

안록산의 반란의 목적은 첫째, 당을 멸망하게 한 후 자신이 황제위에 오르고, 둘째, 의모이면서 사통하는 앙귀비를 황후로 맞아 해로(偕老)하겠다는 욕망으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양귀비는 이름이 아니다. 양(楊)씨 성에 현종이 귀비(貴妃)라는 직함을 주어서 양귀비로 호칭된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옥환(玉環)으로 전해온다. 양귀비의 본관은 포주(蒲州) 영락(永樂)이며 용주(容州)에서 출생했다. 17세 되는 해, 절세미녀의 평판속에 현종의 제18왕자 수왕(壽王) 이모(李瑁)의 비(妃)가 되었다.

양옥환은 현종의 18번째 아들인 수왕을 먼저 미모와 가무와 방중술로 현혹하였고, 두 번째, 시아버지인 현종의 유혹에 성공한 것이다. 권력과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서는 “아들과 시아버지를 가리지 않고” 유혹하여 성공한 사례를 남긴 양귀비였다. 양귀비는 혼자 독백했다. "미녀가 출세하려면 부자(父子)도 가리지 않고 성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현종이 총애하던 무혜비(武惠妃)가 죽고 외롭게 있을 때, 수왕비가 당나라의 둘도 없는 절세미녀라는 것을 보고하는 신하가 있었다. 현종은 구미가 당겨 황제의 전용인 온천궁(溫泉宮)에 옥환을 불렀고, 옥환이 현종에 총애를 받는 인연이 시작 되었다고 전한다. 양옥환(楊玉環)은 현종과 짜고 수왕과 이혼하고, 저택에서 나와 태진(太眞)이란 이름의 여도사(女道士)가 되어 세인의 눈을 피하면서 현종과 동침하는 밀회(密會)를 즐기다가 27세 때 정식으로 황궁의 귀비(貴妃)로 책봉되었다.

양옥환은 어릴 때부터 절세미녀라는 칭송을 들으면서 평범한 남자의 아내로서 인생을 살지 않고, 황제의 사랑을 받아 부귀영화를 마음것 누리고 싶다는 포부를 주위에 떠들었다. 그녀가 16세 때 어느 해 봄, 고묘(古廟) 부근에서 점을 잘치는 늙은 여도사를 찾아가 자신의 미래를 물어보았다. 여도사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고 복면을 쓰고서 옥환을 관찰한 후 이렇게 예언했다.

“낭자는 하늘이 낸 절세미인으로 황제를 모셔야 할 자색(姿色)일세. 그러러면 나의 특별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네. 안 그러면 절세미녀로서 출세할 수가 없지. 펑범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해로하지 못하고, 뭇 남자들의 욕정의 놀이개 노릇을 하다가 비명횡사를 당할 걸세."

양옥환은 여도사에 절올 올리고, 가르침을 청하였다. 여도사는 남자를 유혹하는 갖가지 방법을 가르쳤다. 우선 가무(歌舞)를 가르쳐 주었다. 남자를 성의 쾌릭으로 정신 빠지게 하는 방중술(房中術)도 가르쳤다. 남자를 유혹하는 갖가지 비법을 전수 한 후 여도사는 자신의 복면울 벗고 얼굴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여도사의 얼굴은 이마에서 눈을 거쳐 텩에 까지 칼맞은 자국이 몇 군데 있어 보기에 흉측하였다.

“나는 예전에 장안에서 명성을 떨치던 명기(名妓)였다네. 하지만 황제는 인연이 없어 유혹하지를 못했지. 내가 실수를 한 것은 나를 찬사하고 사모하던 사내들에 게 너무 많이 살을 섞은 것이라네. 나의 유혹에 빠져 가산을 탕진한 어떤 미친 놈이 질투에 의해 컬로 내 얼굴을 이렇게 망쳐버렸다네. 끝내 나를 죽이려 들어서 도망쳐 은신하여 얼굴을 가리고 점술로써 셍계를 이어 간다네. 찬사하는 남자들에 너무 많이 몸을 주지 말게나. 남자는 늙으나, 젊으나 미너에 대한 독점욕이 강하고, 질투가 많다네. 늙은 놈의 질투가 무섭지. 예언컨대 낭자는 오직 황제 한사람만을 유혹해서 부귀를 누려야 하네.”

양옥환은 오직 황제 한 사람에 몸을 허락할 뿐, 다른남자에게는 몸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천지신명과 여도사에 맹세를 하고 또 했다. 그런데 그녀가 하산할 때 숲속의 바위에 정좌한 노승이 무섭게 소리쳤다. “천명의 남자가 올라타고, 만명의 남자거 올라타 누를(千乘萬壓) 미녀 요괴로다. 속세의 삶을 버리고 사찰에 들어가 부처님을 섬기는 비구니가 되면 30대 중반에 비명회사는 면할 텐 데…. 당장 비구니가 되어 청정한 공덕을 쌓아야 한다!”

황제를 유혹하여 권력과 부귀영회를 마음껏 누리려던 양옥환은 눈살을 찌푸리며 노승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심각히 생각해볼께요.”

양옥환은 타고난 절세미모로 우선 현종의 아들 수왕을 유혹하여 수왕비가 되었고, 마침내 최종 타깃인 현종을 유혹하는 데 성공하여 양귀비가 되었다. 당시 현종은 60여세, 양귀비는 18세 때였다. 현종은 양귀비의 미색과 가무에 도취하였고, 거의 매일 주야를 가리지 않고 양귀비의 방줄술에 녹초가 되어 늙어 갔고, 양귀비가 원하는 대로 권력과 부귀를 내주었다.

양귀비의 권력은 하늘을 찌를듯이 높았다. 양귀비의 추천에 우선 양귀비의 세 바매들은 현종으로부터 한국부인(韓國夫人), 진국부인(秦國夫人), 괵국부인(?國夫人)으로 봉해졌고 오빠인 양국충(楊國忠)은 졸지에 대장군이 되어 당에 호령하는 신분이 되었다. 이 무렵 멀리 변방에 무관으로 있는 안록산이 들으니, 당나라에서 출세하려면 양귀비를 잡아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어렵게 안록산은 현종과 양귀비를 만났을 때, 양귀비의 의자(義子)가 되어 황제에 충성하겠다고 자원하여 간청했다. 현종과 양귀비는 허락을 하였다. 드디어 안록산은 양귀비의 추천으로 당나라의 3개 절도사를 겸임하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고속 출세를 하였다. 안록산의 탐욕은 끝이 없었다. 양귀비와 모자지간이라고 현종의 눈을 속이고, 속내는 이층(二層)을 이루고 즐기는 사통(私通)하며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양귀비도 지난 날 여도사와 천지신명께 맹세한 것을 망각해버렸다. 현종은 귀비로 책봉할 뿐 황후로 만들어주지 않은 불만이 있었다. 또 현종은 남근도 간신히 발기하는 노인이었다. 당시 안록산의 나이는 40대 후반이었고, 키는 183이 넘었고, 거구요, 괴력으로 배불둑이 장사였다고 전한다. 그는 중국 여성인 어머니와 돌궐 장사와의 사이에 태어난 혼혈 남성이었다 전한다. 당시 양귀비는 32세의 나이에 키는 173-4cm의 통통한 육체를 가졌다고 전한다. 양귀비는 속으로 계산했다. 안록산을 황제로 만들고 자신은 황후가 되는 꿈이었다. 탐욕의 불이 양귀비를 눈 멀게 한 것이다.

양귀비와 민회의 재미에 빠진 안록산은 양귀비의 궁에 가서 양귀비의 시녀 소옥(小玉)을 좋아하는 척 큰소리로 “소옥아!” 부르면 양귀비가 나와 품에 안겼다는 것이다. 안록산은 새로운 황제, 양귀비는 왕후가 되는 언어를 주고 받으며 사랑놀이를 하고 서로 굳게 변치 말자고 약속하였다. 훗날 안록산은 반란을 일으켜 연(燕)나라 황제를 저처하고, 양귀비에게 “황후로 해주겠다”는 사랑의 편지를 주고 받다가 마침내 현종에 발각되어 양귀비는 35세 때에 처형을 당한 것이다.

안록산은 양귀비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비보를 확인하고 난 후 곧바로 실성한듯한 행동을 마구 했다. 안록산의 아을 안경서는 반란군의 군심(軍心)의 동요를 막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어버지를 시해하고 말았다. 따라서 양귀비와 안록산의 사랑의 꿈은 허망하게 개꿈이 되고 말았다. 절세미녀 양귀비는 현종에 대한 지조와 절개를 지키지 않아 허무하게 죽어 사라지고 후세인들에 한없는 안타까움만 남겼다.

하늘이 냈다는 천하절색 양귀비는 중국은 물론 지구촌에 절세미모 하나로 고속출세를 해보겠다는 꿈을 꾸는 미인 여성들에게 영원한 교훈을 주었다. 미녀는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지조와 절개없이 몸을 함부로 남자에게 주다보면, 허황한 탐욕에 의해 언제 어느 때던 비참한 최후흫 맞이할 수 있다는 교훈이다.

나는 이 글을 쓰기 전 중국에서 발간된 양귀비의 전기와 야사(野史)를 수집하여 분석하여 결론을 내었다. 천하절색 양귀비는 학문을 닦은 여자는 아니고, 미래에 자신이 지은 인과에 의해 닥치는 재앙을 피하는 지혜로운 여자는 못되었다. 양귀비는 교살되어 죽으면서 눈앞에 지난 날 여도사와 호통치는 노승의 교훈이 떠올랐고 맹세한 것을 지키지 못한 것에 후회막급이었지만, 모두 소용없이 황천(黃泉)으로 떠나는 수 밖에 없었다.

우주를 창조한 조물주의 자비에 의해 준비된 지구는-, 우리가 속해 있는 태양계에 유일하게 적당한 거리로 태양에서 광명과 에너지를 받아오는 특별한 행성(行星)이면서, 인간이던 아니던 업(業)대로 태어나 남녀가 인연맺어 사랑하고 자손을 낳기도 하는 음양계이다. 양귀비는 35세 되는 해, 육신은 자작자수(自作自受)의 업(業) 때문에 비명에 사라졌지만, 언제부터인가? 중국은 절세미녀 양귀비를 그리워하며 상찬하는 극(劇)과 가무를 만들고, 아쉬워하고 있다. 양귀비의 목욕하는 아름답고 풍만한 나신상(裸身像)까지 조각하여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어떤 교훈을 주고 있다. 여자는 오직 권력과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함부로 몸을 여러 남자에게 주는 사랑의 결론은 비명횡사가 올 뿐이라는 것이다. 작금의 한국 미녀도 명심해야 할 교훈이다. 비록 절세미녀는 못되는 평범한 여성으로 태어나 권력도 부귀영회도 없지만, 진실한 사랑을 하면, 아름답게 영원한 이야기로 인구에 전해지지만, 절세미녀로 오직 권력을 위하고, 부귀영화만을 구하는 배신의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비참한 일장춘몽(一場春夢)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하겠다. ◇




李法徹(이법철의 논단 대표)




ㅉㅉㅉ 20/01/28 [12:45] 수정 삭제  
  제발 철자법 좀 맞게 글을 쓰세요. 글을 쓴 후 맞춤법이 맞는지는 적어도 한 두 번은 확인해야 합니다. 본인의 글을 읽다보면 오타가 항상 발견되어 읽는 것도 짜증이 납니다. 참고하세요!!!!!
빨강펜선생났네 21/07/27 [22:16] 수정 삭제  
  마춤법이 쫌안마즈면 어떼서 구러냐. 잘만 썻꾸만 개니 멍멍거리내 시님글이 채곱니다 채고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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