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범어사의 전설

법철 | 입력 : 2004/03/04 [12:56]
명학스님이 주지로 있던 부산시 동래 범어사 일주문.




범어사 곳간을 지키는 구렁이




법회날이었다. 법당에는 그 날의 설법사인 노스님이 법단에 올랐다. 그는 부처님에게 등을 보이고 정좌하였다. 가사장삼을 입어 위의를 갖추고 백미(白眉)의 눈을 들어 대중을 빗자루로 쓸듯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쏴악 쓸어보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양구(침묵)에 들어갔다. 의식을 집전하는 젊은승려의 청법게가 끝나고, 죽비에 의해 입정의 시간도 끝났다. 이윽고 법사는 눈을 번쩍 떴다. 형형한 눈이 허공을 응시하는 듯 하더니 그는 주장자를 들어 쿵! 법상을 한 번 울리고 큰소리로 게송을 읊었다.

안개 사라진 가을,
만 리에 구름 걷다.
해는 왼쪽에 달리어 언제고 옮기지 않는데
달은 오른 쪽에 걸리어 항상 그 속을 비춘다.
넒고 빛나 고금에 통하고,
그윽하고 아득해 시종이 같다.
여기다 조그만 암자를 지어
한평생 삶을 맡길 만하거니
백 년, 3만 6천 일에
날마다 더욱 이 이치 참구하라
(日益日兮參此理!)


그 때, 대중석에서 40대 후반의 보살이 조용히 일어났다. 돌출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그녀는 신도이지만 승복을 입고 있었다. 불심이 깊다는 증거이다.
그녀는 선채로 합장하여 공손히 반 배의 절을 올리고 법상의 법사를 향해 법거량의 자세를 취했다. 설법시작에 그러한 돌출적인 법거량의 행동이 그동안 전혀 없었기에 대중은 놀랐다. 의식 목탁을 잡은 젊은 승려는 얼굴이 창백해지고 당황해 하면서 법사의 눈치를 살폈다. 법사가 싫어하는 눈치라면 즉각 그 보살의 행동을 제지해야 한다. 그 보살은 합장한 채 법사를 향해 공손히 말했다.
“큰스님, 설법초에 이렇게 말씀드려 우선 죄송함을 표합니다. 다름이 아니라, 저희는 한문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큰스님의 선법문을 매양 들으면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오늘은 저희들이 알아듣기 쉬운 법문을 해주시었으면 청하옵니다.”
법사는 주장자로 법상을 세 번 내리치고 한문의 게송을 읊으려다가 중지하고 어정쩡하게 주장자를 잡고서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물었다.
“무슨 법문을 원하시는가?”
“인과법문입니다. 그것은 스님도 인과에 떨어지는지 그 인과법문을 듣고자 합니다.”
“으음….”
목탁을 잡은 승려가 창백한 얼굴로 일어서려고 했다. 여타 대중은 이상하게도 기침소리도 내지 않고 묵묵히 법상을 올려보고 있었다. 그들은 침묵으로 인과법문을 구하는데 동참하고 있었다. 법사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그는 손으로 신호를 보내어 목탁을 잡은 승려의 행동을 제지했다. 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과에는 승속의 차별이 있을 수 없지. 암. 부산 동래 범어사 명학(明學)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드려야겠구먼. 자, 그러면, 대중은 이제부터 승려가 인과에 떨어진 기이한 이야기를 듣고 깨달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법사는 백미를 살짝 찡그리면서 물었다.
“그런데 지금 문법하는 보살의 법명은 어떻게 되시는가?”
“예. 저는 김 보문행이라고 합니다.”
“음…. 보살과 시회대중이 원하는 법문을 하겠소. 이제 자리에 앉으시요.”

아득한 옛날, 부산 범어사의 달 밝은 고요한 야반삼경의 깊은 밤이었다. 달빛 속의 고요한 산사에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어났다. 낙엽이 바람에 무수히 흩날리고, 법당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 몸부림을 치면서 비명처럼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바람 속에 가까운 숲 속에서 부엉이의 음침한 소리가 광풍에 가세하듯 엄습해왔다. 그 때, 사찰의 주지스님의 방안에서는 명학스님 혼자 방문을 걸어 잠그고 연신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방문 밖의 소리에 신경을 곧추 세우며 혼자 시줏돈을 세고 있었다.

그는 출가하여 승려가 된 이후 불경에는 관심이 없고, 더더구나 선방의 문고리조차 잡아본 적이 없는 철저한 사판승이었다. 그는 출가승려로써 생사해탈의 공부도 중요 하지만, 사찰의 건립과 운영, 보수와 대중외호도 중요하다고 생각, 자신은 너무 고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사찰이 퇴락 하여 쓰러지려하면 창·개수(創, 改修)하기 위해서 즉각 신도들에게 모금을 해야 한다. 또, 일없이 먹어대기만 하는 것 같은 대중을 외호 하려면, 역시 신도들에게 모금을 해야 한다. 모금이 어디 쉬운 일인가. 명학스님은 누구보다도 선 공부를 한다면서 허구헌날 방안에서 앉았다가 먹어대기만 하는 것 같은 선원납자를 은근히 경원하였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로부터 ‘명학선사(明學禪師)’라고 호칭되는 것을 노골적으로 좋아했다.

같은 시간, 객실에서는 60대의 노승 한 사람이 호롱불을 사이에 두고 20대 초반의 젊은 승려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노승은 금강산에서 온 객승이었다. 그는 다 헤어져 꿰맨 누더기 옷을 걸치고 좌선자세로 앉아서 자비로운 눈으로 젊은승려를 건네 보았다. 노승은 오랜 세월 선정을 닦은 선원납자였다. 그는 금강산에서 선 수행을 하다가 동안거에 들어가기 전, 부산 범어사에 까지 이른 것이다. 그는 낮에 유심히 보았던 젊은 승려를 객실로 불러 들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내일이면 금강산으로 떠나야 하는데, 떠나기 전에 젊은 승려에게 깨우쳐 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그는 젊은승려를 법기(法器)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젊은승려는 공부를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노승은 자신을 함월(含月)이라고 소개하고 젊은 승려에게 물었다.
“자네를 부른 것은 자네가 하도 부지런히 노동을 하기에 자네를 불렀다네. 자네의 법명은 어떻게 되는가?”
“예. 저는 속성은 경주 김가이고, 법명은 영원(靈源)이며, 이곳 주지이신 명학스님의 상좌입니다. 출가하여 득도한지는 6년 째 입니다.”
“그동안 무슨 공부를 하였는고?”
“저희 스승께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모두가 공부아닌 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부지런히 일을 하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일만 할 뿐입니다.”
“승려가 되는 기초공부인 불경은 배웠는가?”
“배우지 못하였습니다. 저희 스승께서는 중은 염불만 잘하면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신도들로부터 시주를 받기 위해서는 염불을 잘해야 한다고 해서 목탁 치고, 요령 흔들며, 염불하는 것은 배웠지요. 경전은 하나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불교에 입문하여 처음배우는 ‘초발심자경문’은 배웠겠지?"
“그것도 아직 배우지 못했어요.”
“나무관세음보살. 절집에 6년이나 있으면서 그것조차 배우지 못하고 소처럼 일만 하고 있었구먼.”
함월스님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자네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부처님의 말씀인 경문을 보지 않고, 부처님이 수행하시던 선 수행도 하지 않으니 진짜 부처님의 제자라고 볼 수가 없네. 공부라는 것은 때가 있는 것이네. 자네는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나이에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하네. 부처님이 아신다면 슬퍼하실 걸세. 안타까운 일이지.
"....."
" 우주의 시간에서 볼 때 인간의 생사는 전광석화 같다네. 자네가 부처님의 진실한 제자가 되려면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야…. 알겠는가?
"예..."예, 큰스님."
"출가승려가 공부하여 깨달아 광제중생을 하지 않는다면 첫째 나를 낳아준 부모님에게 출가하여 효도하지 못한 죄와 시주님들의 시줏밥을 공짜로 먹어댄 도적과 같은 죄를 짓는 것이니, 양가득죄(兩家得罪)를 하게 되고, 둘째, 자신의 인생에 돌이킬 수 없는 배우지 못한 후회의 한을 갖게 되고, 셋째, 승려가 공부하지 않고 탐착만 부리다 죽었을 때, 그 영혼은 속세의 영혼보다 죄가 무거워 명부(冥府)의 염왕(閻王)으로부터 추상같은 심판을 받아 지옥고와 추악한 업보의 몸을 받아 온갖 고통을 받게 되고 말 걸세. 알아듣겠는가?”
밤이 깊도록 함월스님은 젊은 영원을 위해서 공부 길에 나서라고 무수히 권장하고 촉구했다. 영원은 함월스님의 고귀한 법문의 뜻을 깨닫고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면서 공부를 하겠다고 맹세하며 절을 올리었다. 함월스님은 마지막으로 말했다.
“나는 내일새벽에 금강산으로 떠날 것이네. 나는 금강산에서 공부하려는 자네를 기다리겠네.”

같은 시간, 범어사의 후미진 구석방에서는 승려 셋이 비분 어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30대 후반으로서 명학스님의 상좌들이었고, 영원의 사형들이었다. 세 승려들 중에 남산(南山)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나는 부처를 이루자고 절에 들어와서 이상한 스님을 은사로 삼은 탓에 나는 무식쟁이가 되었어. 아는 건 고작 염불 몇 편뿐이야. 불경을 모르고 염불만 해대고 있으니...아까운 청춘만 가버렸다니까.”
동산(東山)이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나도 동감이야.”
그 때 북산(北山)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치고는 내뱉듯이 말했다.
“세속에서는 부모를 잘 만나야 하고, 승려가 되어서는 스승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이제 생각하면 진리였어. 나역시 노임도 없는 노동자로 죽도록 일만 해온 무식쟁이지. 아까운 청춘이 가버렸다니까.”
그들은 은사인 명학스님을 성토하고 있었다.

북산이 음침하게 웃으며 선동하듯 다시 말했다.
“은사스님은 신도들만 만나면 우는소리를 해대는 데,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 같네. 내가 은사스님에게 체통을 지키세요, 라고 하니까, 화를 벌컥 내시면서, 사찰운영을 하자니 호주머니에 먼지뿐이니,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야. 시주를 받으려면, 명분을 세우고 부처님을 들먹이며, 우는소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은사스님이 신도에게 하시는 말씀 기억하시나?”
남산이 실소를 터뜨리며 대꾸했다.
“무소유사상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과, 저승 갈 때 무얼 가지고 가는 것이냐, 는 것이지? 우리 은사스님이야 말로 진짜 저승갈 때 무얼 가지고 가시려는 것인지.”
이번에는 동산이 이마를 찡그리며 화답했다.
“은사스님은 그동안 챙긴 시줏돈을 어디다 감추었을까? 아마 수 만 량이 될 터인데. 방안에 두었을까? 아니면 누구에게 이자놀이라도 하는 것일까? 잠시 외출만 해도 방문에 쇠부랄만한 자물통을 채우니 알 수가 있어야지. 나는 그게 궁금해 죽겠다니까.”
북산이 코웃음을 치더니 순간 심각한 얼굴로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가 그 돈을 찾아보세. 우리중 누구든 그 돈을 찾으면 사형제간의 의리를 생각해서 삼등분해서 나누세. 나는 그 의리를 지키겠다고 맹세하겠네. 자네들은 어때? 혼자 발견해서 도망치지는 않겠지?”
남산과 동산은 동의했다. 북산은 더욱 음성를 낮추어서 속삭이듯 말했다.
“자네들에게 일급 정보를 알려 주겠네. 은사스님이 신뢰하는 공양주보살의 말에 의하면, 은사스님은 우리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사제인 영원을 신뢰한다는 거야. 은사스님이 죽으면 자신의 전 재산을 영원에게 물려주고 싶다고 말씀을 하더라는 것이야. 이런, 제길. 우리는 말짱 헛거야. 자네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남산과 동산은 몽둥이로 뒤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딱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가운데 분해서 씩씩거렸다.
북산은 간교한 눈빛을 빛내면서 말을 이었다.
“이제부터 우리 셋이 합심하여 할 일은 영원을 하루속히 내쫓아 버리는 일을 해야겠구먼. 그래야 은사스님의 돈을 우리가 차지할 수 잇지 않겠나?”
남산이 이마를 찌푸리며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착한 사제를 어떻게 내쫓나? 무슨 방법으로?”
북산은 개가 으르렁거리듯 사납게 말했다.
“강온의 방법이 있지.”
동산이 황급히 물었다.
“강온의 방법이란 무엇인가?”
“강은 지리산 참회를 시키는 것이네. 지리산 참회는 트집을 잡아 몽둥이 찜질을 하는 것이고, 온의 방법은 달래고 부추기어 내쫓는 방법이지.”
남산이 더욱 이마를 찌푸리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착한 사제를 두고 지리산 참회는 절대 꺼내지 마시게. 신장님의 벌을 받을까 두렵네. 온의 방법으로 하세. 언제 그 방법을 쓸 텐가?”
북산이 사나운 눈으로 확인하듯 두 사람을 보면서 결론을 지었다.
“내일아침부터 착수하세. 우리는 한 배를 탄 동지일세. 절대 의리를 변해서는 안되네. 특히 은사스님의 돈을 혼자 독식하는 자는 절대 없어야 될 것이네. 꼭 삼등분해서 평등히 나누세. 맹세할 수 있지?”
그들은 합심을 맹세하는 뜻에서 방바닥에 손바닥들을 포개었다.
그들이 문 밖을 나섰을 때 밖은 여전히 광풍에 의해 낙엽이 흩날리고, 풍경소리가 비명을 내질러대었다.

다음날, 새벽 함월스님은 걸망을 메고 표표히 떠나갔다. 영원은 일주문에 서서 아득히 보이지 않는 함월스님의 뒷 모습에 무수히 감사의 배례를 드리었다.
영원은 함월스님을 따라 나서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은사스님에게 고별의 인사는 드리고 떠나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침 공양이 끝나기가 바쁘게 영원은 세 사형들에게 호출되었다. 후미진 구석방에 영원이 들어사자 세 사형들은 다투어 영원의 어깨와 등을 치면서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북산은 영원에게 차를 권하면서 다정하게 입을 떼었다.
“오늘, 우리는 평소 영원이에게 갖었든 생각을 토로하기로 했다네. 솔직히 우리는 영원이를 볼 때 우리는 내심 부러웠다네. 왜냐면, 우리는 하근기(下根機)이고, 영원이는 보기 드문 인재인 상근기(上根機)라는 것이네. 하근기는 공부를 해도 성불하기 어렵다네. 각종 마장이 따라서 성불하기 힘들어. 그러나, 상근기는 공부를 하면 부처를 이룰 수 있지. 우리 같은 하근기는 사찰에서 무식장이로 영선부(營繕部)에서 일군들과 함께 노역이나 하고, 필요하면 짧은 염불로 징치고 목탁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지. 하지만, 사제는 상근기이니 부처를 이루어 만중생을 제도하시게나.”
영원은 평소에 깔보든 사형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한 뜻을 깨닫지 못했다. 그저 송구스러워 어쩔줄을 몰랐다. 벌개진 얼굴로 부끄러워 할 뿐이었다. 남산과 동산은 좌정하여 두 눈을 지그시 감고 잔뜩 점잔을 빼고 있는 가운데, 북산은 더욱 다정한 듯이 말을 이었다.
“결론적으로 자네는 우리처럼 청춘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이제라도 공부에 전념해야 할 것이네.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에서 6년 고행 끝에 성불했고, 달마조사는 소림굴에서 9년면벽 끝에 성불하였지. 우리가 볼 때에는 자네는 선방에서 면벽10년이면 성불을 할 수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네. 상좌들에게 공부를 시키지 않는 은사스님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자네는 죽도록 일하고 아까운 청춘만 보내고 후회하는 우리를 생각해 보시게. 불쌍한 신세지. 자네는 대망을 품고 하루속히 걸망을 챙겨 공부 길에 나서시게. 알겠는가? 자네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네. 오늘밤이라도 걸망을 챙겨 공부 길에 나서시게.”
세 사형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사제의 손을 잡고 이구동성으로 사제의 미래를 걱정해 주었다.

이번에는 남산이 눈물을 글썽이며 애조띄게 말했다.
“사제, 상근기인 자네가 부럽기 한이 없네. 성불하면, 사형사제인 우리의 인연을 잊지 말고 제일 먼저 우리를 제도해주시게. 제발, 촌각을 다투어 공부길에 나서게. 오늘밤이라도 걸망을 메고 훌쩍 떠나시게. 한 마리의 대붕(大鵬)처럼 훨훨 날아가시게. 은사스님에게는 우리가 잘 말씀드릴 것을 약속하겠네.”
영원은 사형들의 말에 현혹된 것은 아니었다. 함월스님을 찾아 스스로 그 공부의 길로 떠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낮, 영원은 스승인 명학스님의 방안으로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은 심정을 고백했다. 명학스님은 불같이 노해 이렇게 말했다.
“공부가 따로 있는 줄 아느냐? 부지런히 불사를 하는 것도 공부야. 내가 누누히 일렀건만 너는 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너를 나의 후계자로 생각하였는데, 너는 나를 떠날 생각만 하는구나. 어느 놈이 너한테 그따위 바람을 넣었냐? 엉?”
영원은 스승이 자신을 공부길에 보내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명학스님은 불같이 화를 내어 영원을 꾸짖었다. 명학은 각오한 바 있어 묵묵히 합장하여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마침내 그 날 밤, 영원은 사형들에게 떠밀리다시피 하여 걸망을 메고 범어사의 일주문을 나섰다. 떠나가는 영원을 향해 사형들은 작별이 아쉬운 듯 각기 눈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주었다. 영원은 사형들이 고마워서 훨훨 떠나면서 몇 번이고 돌아서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영원이 공부를 위해 떠나갔다는 소식을 접한 명학스님은 처음에는 성을 왈칵 내었으나 노자도 없이 떠나간 상좌가 불쌍하게 생각되어 후회되었다. 노자라도 보태주는 것인데….

마침내 영원은 금강산에 도착하여 함월스님을 찾을 수 있었다. 함월스님은 선원의 조실스님이었다. 그날로부터 영원은 불가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함월스님의 배려와 특별지도는 영원의 공부를 크게 도와 주었다. 영원은 수많은 선승들 틈에 끼어 참선공부를 시작했다. 영원은 선정을 닦는 무심한 시간에 산색이 몇 번이나 푸르렀는가를 기억하지 못했다. 십년의 세월이 훌쩍 넘어섰다. 그 사이에 함월스님의 입적이 있었다. 함월스님은 입적의 순간에 영원에게 다음과 같이 부촉했다.
“부처는 누구인가? 목불인가? 동불인가? 토불인가? 진짜 부처는 ‘대자대비’이다. 부디, 세상에 있는 동안에 대자대비를 실천하여라. 알겠느냐?”
영원은 함월스님의 다비식을 마치고, 난 후, 더욱 용맹정진하여 마침내 크게 깨달았다. 그가 어느 날, 선방에서 좌선속에 선정에 들어있는데, 홀연히 명부의 염왕이 죄인을 향해 치죄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정속에 살펴보니 명부의 우두나찰, 마두나찰, 저두나찰들이 스승인 명학스님을 포박하여 채찍으로 후려치며 염라대왕 앞의 맨 땅에 부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스승은 채찍으로 맞아서 온몸이 상처투성이요, 유혈이 낭자했다. 염왕은 높은 전각에 앉아 추상같이 호령을 하고 있었다.
“사람 몸 받기가 어렵고(人身難得), 장부의 몸 받기가 어려우며(丈夫難得), 불법 만나기가 어려우며(佛法難逢), 바른 스승 만나기가 어려웁다(正師難逢)고 하였으나 너는 모든 것을 얻었다. 그런데 너는 승려로서 공부를 하지 않고 재물에만 탐착하였으니 너의 죄업은 네 스스로 알렸다!”
명학스님은 땅바닥에 피를 적시면서 울부짖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불사, 즉 가람수호(伽藍守護)와 대중외호에 전념하였을 뿐입니다. 제발 저의 죄를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염왕은 불같이 진노하여 소리쳤다.
“닥쳐라! 너의 가람수호와 대중외호는 진실한 행동이 아니었다. 너는 신도들에게 시줏돈을 받아내기 위한 명분으로 각종의 불사를 일으키어 사복을 채우는 재미로 평생을 살아온 위선자이다. 네 죄의 증거는 네가 그동안 착복하여 네 방안의 구들장에 숨겨 논 5만 량이 다. 너는 그 착복한 돈으로 세상의 불우한 사람 가운데 단 한 명도 구하지 않은 악덕 위선자이다! 네 죄를 인정하겠느냐, 아니면 업경대에 서서 네가 지은 죄를 낱낱이 네 눈으로 다시 확인하겠느냐?”
명학스님은 슬피 울면서 호소했다.
“참회하옵니다. 진정 참회하옵니다. 재생의 기회가 저에게 주어진다면, 고해중생을 위해서 분골쇄신 헌신봉사 하겠나이다. 제발, 자비를 베풀어주옵소서. 제발 자비를….”
염왕은 또 진노하여 소리쳤다.
“세상의 법은 뇌물과 정이 통할 수 있다. 그러나, 명부의 법은 추상같이 지엄하고 평등하다. 만인지상의 황제라 해도 저승길에서는 힘없는 백성과 똑같이 때가 되면 어김없이 붙잡아 와서 치죄 하는 것이다. 추호도 봐주는 것은 없다. 그러나, 그동안 절에서 불사를 네세워 시줏돈을 훔치다가 저승으로 잡혀오기는 했지만, 가람수호와 대중외호를 한 공덕은 없지 않다. 그래서 정상을 참작하여 영원히 하루에 만번 죽고, 만번 사는(一日一夜 萬死萬生) 고통의 형은 면제해주겠다. 그러나 스스로 지은 업보대로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다. 저 자의 영혼을 구렁이의 몸에 넣어 저 자가 살면서 탐착하든 곳간을 지키도록 판결 한다!”
명학선사는 절망하여 소리높이 울부짖으며 애소했다. 나찰이 명학스님을 다시 채찍으로 후려치며 개끌듯 끌어갈 때, 명학스님은 절규하면서 애원했다.
“대왕님, 저에게 인간으로서 재생하여 못다한 수행정진을 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요?”
염왕은 차갑게 대답했다.
“너를 구원해줄 수 있는 인연은 살아있는 성현이어야 한다. 네가 그런 인연을 만날 수 있는 공덕을 쌓았느냐? 부질없는 희망을 버려라!”

영원스님은 스승이 나찰에게 끌려가면서 울부짖는 소리를 또렷이 들으면서 선정에서 깨어났다. 아아, 나를 승려로 만들어준 불문 최초의 스승인 은사스님…. 영원은 은사스님의 고통을 생각하고 울면서 밤새워 생각했다. 아아, 어찌해야 은사스님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영원스님은 말을 빌려 타고 금강산에서 범어사로 주야를 가리지 않고 달렸다. 과연 스승은 싸늘한 시체로 입관되어 사찰의 후미진 구석방에 버려지듯 놓여 있었다. 생전에 인심을 잃어서인지 애도하는 문상객도 없이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웬지 빈소를 지켜야할 사형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초라한 위패에는 ‘명학선사영가’라고 서툰 붓글씨로 씌여 있는데, 스승의 관 앞에는 촛불과 향로가 꺼진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영원스님은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우고서 소리내어 애도하였다.

도대체 사형들은 어디를 간 것일까. 영원스님은 사형들을 찾아다니다가 후미진 구석방에서 두 명의 사형을 간신히 찾을 수 있었다. 동산과 남산은 누구에게서 몰매를 맞았는지 머리, 안면, 팔, 엽구리 등에 붕대를 감고 누워 신음하고 있었다. 동산은 누워서 실눈을 뜬 채 영원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몸을 일으키었다. 그는 다 죽어가는 신음소리를 내더니 애써 웃으면서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은사스님은 단 한 마디, 유언도 못하시고 밤사이 심장마비로 돌아 가셨다네. 살아생전에 불우 이웃돕기에 구린 엽전 한 개를 남에게 보시하지 않는 분이라서 인심을 잃어서 아무도 슬퍼 해주지 않고 장례를 도와주지도 않는다네.”
“두 분 사형님들은 어째서 몸을 그리 다치셨습니까? 다비식을 앞두고….”
“지리산 참회를 당했네.”
“누구한테요?”
“누구겠는가? 생각하면 배신감으로 이가 갈리네. 입만 열면, 사형사제의 의리가 변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해 마지않든 북산이가 우리한테 지리산 참회의 맛을 보여 주었네. 그 몹쓸놈이 방구들장에 숨겨 논 은사스님의 돈을 혼자 몸땅 챙겨버렸어. 우리는 사형제간의 의리를 생각하여 은사의 다비식을 마치고, 돈을 공정히 삼등분 하자고 제안했었지. 그런데, 북산은 저자의 깡패를 사서 우리를 몽둥이로 타작을 하게 하고 돈을 챙겨 도망을 쳐버렸다네. 그 나쁜 놈은 분명히 인과응보를 받을 거야. 그렇지, 사제님? 그런데, 우린 돈 없는 신세라는 것을 사제는 아시지? 몇 푼 생기면 밤에 곡차를 마시다 보니 수중에 돈이 보존 될 리 없지. 그나저나 당장 내일 스승의 다비식 때 쓸 비용이 한 푼도 없다네. 사제, 자네 수중에 돈이 있는가?”
영원스님은 수중의 돈을 털어 사형들에게 내주었다. 부상당한 사형들이 벌떡 일어섰다. 사형들은 애조띈 눈으로 건네 보면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우리는 지리산 참회를 강제로 당하고서야 새출발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네. 진실로 과거의 잘못을 참회하네. 스승의 다비식을 마치고 우리도 자네처럼 공부를 하겠네. 기회가 아직 있겠지?”
영원스님은 양손으로 두 사형의 손을 꼬옥 잡고 고개를 끄덕이었다.

은사의 다비식을 마친 영원스님은 범어사 곳간을 살피면서 스승의 법명을 애타게 불러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영원스님은 은사스님의 천도를 위해서 명부전에서 천일기도를 시작했다. 그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명부전에 가서 지장보살상과 염라십대왕상 앞에 촛불을 밝히고, 청수를 올리고, 향을 피우면서 지극지성으로 은사스님의 천도기도를 올리었다. 그는 천일기도가 끝나는 전 날, 명부전에서 기도를 마치고, 좌선하여 선정에 들었다. 선정속에 붉은 옷을 입은 명부의 사자가 찾아왔다. 사자는 공손히 예를 갖춘 후, 영원스님에게 말했다.
“스승을 위하는 천일기도에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하는 영원스님의 지극한 효성에 우리 명부의 윗분인 지장대성을 위시하여 십대 염왕들이 모두 감동을 받았답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영원스님이 은사스님인 명학스님의 영혼을 찾도록 기회를 주도록 결의 했지요. 명학스님은 남몰래 단팟죽을 좋아했답니다. 해서, 단팟죽을 쑤어 곳간에 들어가서 북쪽의 기둥 밑, 구멍 앞에 놓아 냄새를 풍기고, 스승의 이름을 나직이 일곱 번 부르십시요. 그러면 그분의 환생을 볼 수 있지요. 그 다음의 할 일은 영원스님의 몫입니다. 일주일의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는 자시가 지나면 은사스님의 영혼은 구원할 수가 없어집니다. 욕심많은 돼지로 환생하고 맙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어서, 은사스님을 구원하십시오.”

사자는 다시 예를 표하고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영원스님은 팟죽을 쑤어 곳간의 구멍앞에 놓고 냄새를 풍기면서 스승을 불렀다. 과연 어두운 구멍에서 시커먼 먹구렁이가 기어 나왔다. 구렁이는 고개를 쳐들어 팟죽과 영원스님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하듯 혀를 날름거렸다.
영원스님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생전의 스승에게 대하듯 공손히 무릎꿇고 합장하여 나직이 말했다.
“스승님, 좋아하시는 팟죽을 가져왔습니다. 맛있게 잡수십시오.”
먹구렁이는 입을 벌려 팟죽을 먹기 시작했다. 팟죽을 다 먹은 먹구렁이는 다시 구멍 속으로 숨으려고 움직였다. 그 때, 영원스님은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하였다.
“스승님, 스승님은 생전의 탐욕으로 범어사 곳간을 지키는 구렁이의 몸을 받으셨습니다. 이제 인간의 몸으로 재생하여 못다한 수행을 하셔야지요. 언제까지 구렁이의 몸으로 사시렵니까. 몸을 바꾸세요. 제가 인간으로 인도해 드리고, 못다한 수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드리겠어요.”
구렁이는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 때 구렁이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구렁이의 눈에 이슬이 맺히는 듯 했다. 돌연 구렁이는 몸을 기다랗게 기둥을 향해 일어섰다. 이어서 구렁이는 있는 힘을 다하여 기둥에 머리를 세 번 박아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그 때, 구렁이의 입과 코에 피가 흐를 때, 구렁이의 몸에서 스승의 영혼이 파아란 연기처럼 빠져 나왔다. 영원스님은 울먹이며 영혼에게 말했다.
“스승님, 잘하셨습니다. 이제 몸을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따라 오세요. 인간의 몸으로 인도하겠습니다. 저의 말을 꼭 들으셔야만 인간으로서 재생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저를 따라오세요.”
파아란 영혼은 영원스님을 따라나섰다. 영원스님은 영혼을 인간에게 인도하기 위해서 마을로 들어섰다. 태양은 겨우 정오를 갓 지나고 있었다. 영혼이 인간의 몸을 받으려면 성관계를 맺는 인간이 있어야 했다. 성관계를 맺을 때 영혼이 여자의 자궁속에 뛰어들어가서 안착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영원스님이 아무리 찾아보아도 벌건 대낮에 성관계를 맺는 남녀는 찾기 힘들었다. 그는 영혼과 함께 길을 걸으면서 초조해졌다. 그 때, 영혼이 어느 집의 마당으로 황급히 들어가려고 했다. 영혼이 자신이 들어갈 곳을 스스로 찾은 것 같아 영원스님은 기뻤다. 그러나, 마당에는 인간은 없었다. 마당 구석에 돼지우리에서 암수의 돼지가 교미를 붙는 중이었다. 스승의 파아란 영혼은 정신 없이 암돼지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려고 서두르는 것이었다. 영원스님은 소리쳐 제지했다.
“스승님, 그곳에 들어가시면 인간의 몸이 아닌 돼지의 몸을 받게 됩니다. 돼지의 몸을 받으면 수행정진 할 수는 없어요. 제발, 그곳에 들어가지 마십시오.”
영혼은 정신을 차리고 돼지의 자궁속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교미를 붙는 암염소의 자궁 속으로 정신 없이 들어가려고 했다. 영원스님은 또 황급히 소리쳐 제지했다. 정신없는 영혼은 이번에는 소가 교미 붙는 장소를 만나자 암소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심지어는 오리, 닭의 자궁까지 가리지 않고 들어가려고 하는 것이었다. 영원스님은 그 때마다 소리쳐 제지했다.

영원스님은 정신 없이 아무곳이나 들어가려는 영혼을 가까스로 데리고 금강산 길을 재촉하면서 인연있는 남녀를 찾아 헤매었다. 마침내 일주일채 되는 날이었다. 기회가 끝나는 시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영원스님은 초조하여 미칠 것만 같았다. 아아, 은사스님의 영혼은 인도환생할 수 있는 기회를 잃고 마는 것인가. 뜨거운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양볼을 타고 내렸다.
강원도 삼척 지역의 어느 산밑 가난한 외딴집을 지나는데, 대낮에 남녀의 성관계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방안에서 사내의 흥분으로 거친 소리, 마음놓고 소리지르는 여자의 감창(甘唱)소리가 싸랍문 밖까지 들려오는 것이었다. 비로소 영원스님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스승의 영혼에게 나직이 강조하듯 말했다.
“스승님, 바로 이때입니다. 자, 인도환생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절대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저는 가난한 집이 아닌 곳에서 스승님이 환생하기를 바랐습니다만, 뜻대로 되지가 않았어요. 모두 스승님과의 인연인 것 같습니다. 가난한 집이지만, 저 방으로 들어가 여인의 몸 속으로 깊이 들어가 안착하십시오. 10개월 후에 제가 스승님을 찾아오겠습니다. 어서, 들어가세요!”
파아란 영혼은 알았다는 듯이 속력을 내어 방안으로 뛰어 들어가 사라졌다. 영혼은 전씨 성을 한 여인의 몸 속으로 쏜살같이 들어가 태중에 안착했다. 영원스님은 마당에 잠시 서서 기다렸다. 잠시 후, 방안의 두 남녀는 볼일을 다 본 듯 조용해졌다. 그 때, 영원스님은 주인을 찾았다. 잠시 후, 30대 후반의 사내가 힘 빠진 눈빛으로 나왔다. 뒤이어 30대 초반의 부인이 부끄러운 얼굴빛으로 나왔다. 영원스님은 두 부부를 향해 합장하여 반배를 하고, 정중히 말을 꺼내었다.
“두 분께 경하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두 분은 귀한 아들을 임신하시었습니다. 열달 후, 그 아드님을 보기 위해 제가 찾아오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시지요?”
사내가 벌개진 얼굴로 물었다. 부인은 부끄러운지 부엌으로 몸을 숨기었다. 두 부부는 탁발승이 자신들의 부부관계를 엿듣고 자신들을 놀리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영원스님의 진지한 낯을 보고는 정색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영원스님은 또박또박 분명히 강조하듯 다시 말했다.
“10개월 후, 귀한 아드님이 태어나시게 되어 미리 경하를 드리는 것입니다.”
“스님말씀대로 정말 아들이 태어날까요? 웬지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사내가 웃으며 말했다. 부엌에서 부인도 나와서 고개를 저었다. 영원스님은 사내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내기를 할까요?”
“무슨 내기요?”
“정확히 아들을 낳으면 부처님의 제자로 주십시오. 제가 잘 휼륭하게 가르치겠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사내는 여전히 승려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부인을 돌아보면서 약속했다.
“좋습니다. 스님이 이기신다면 스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스님이 지신다면 어쩌시지요?”
“무엇이고 대가를 치르겠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10개월 후, 가난한 외딴집에는 전생의 명학스님이 그집의 아들로 분명히 환생하여 태어났다. 그 날, 영원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찾아와 두 부부에게 축하드리면서 아이가 7세가 되는 해 부처님의 제자로 데려간다는 것을 약속 받았다.

그 해 꽃피우는 봄 날, 소년은 전생을 까맣게 잊고, 부모를 이별하는 슬픔에 소리쳐 울면서 영원스님의 손을 잡고 집을 떠나갔다. 새로 태어난 아들을 등에 업은 어머니와 아버지는 떠나가는 아들을 보면서 울었다.
영원스님은 전생의 스승이요, 금생의 제자인 소년에게 주야로 불경공부를 시키고, 참선공부를 시키었다. 소년은 전생에서 공부를 배척한 훈습 때문에 공부에 진도가 없었다. 영원스님은 소년을 깨닫게 하기 위해 방편을 베플었다. 그는 소년을 후원(後院)의 밀실에 두고 창문에 바늘구멍을 뚫어놓고 말했다.
“너는 이제부터 바늘구멍을 잘 보아라. 바늘구멍으로 큰 소가 들어와서 너의 성명(性命)을 해칠 것이니 너는 힘을 다하여 그 소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라. 알겠느냐?”
소년은 영원스님의 가르킴을 확신하고, 바늘구멍을 응시하며 소에 대해 전념하였다. 7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소년은 소리쳐 말했다.
“스승님, 창문 밖에서 큰 소가 이 창문 구멍으로 들어오려고 합니다.”
영원스님은 소년의 지기(知機)가 바야흐로 열리는 것을 깨닫고 다시 소년에게 이렇게 엄명했다.
“너는 더욱더 발분하여 그 소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바늘구멍을 방호(防護) 해야 한다. 알겠느냐?”
소년은 더욱 용맹 정진하였다. 마침내 7일만에 소년은 소가 바늘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소년은 크게 깨달았다. 소년은 현세의 스승이 전생의 자신의 제자였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영원스님은 소년을 법당 앞 마당에서 불러내어 선문답으로 시험하였다. 소년은 영원스님이 질문하는 조사관(祖師關)의 천칠백공안에 어느 하나도 막힘이 없었다. 영원스님은 너무도 감격스러워서 전생의 스승이자 현세의 제자인 소년을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와락 껴안았다. 소년도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껴안았다. 때마침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 날, 영원스님과 소년은 함박눈을 맞으며 서로 눈물속에 언제까지고 마주 껴안고 서 있을 것 같았다. 함박눈은 하염없이 두 사람의 머리와 어깨에 쌓여갔다.

이 기이한 이야기는 승려의 입에서 세속으로 널리널리 퍼져 나갔다. 훗날, 사람들은 영원스님을 두고 영원조사(靈源祖師)라고 불렀고, 전생의 스승이자 금생의 제자인 소년을 두고는 후원에서 도를 깨달았다고 해서 후원조사(後院祖師)라고 불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수행 정진한 그곳은 금강산 영원암(靈源庵)이라고 불렀다.

누군가 기이한 이야기를 영원암에 있는 비석에 각인하고 제목을 ‘금강산영원암이적기(金剛山靈源庵異蹟記)’라고 명기하였다. 부산 범어사에 가면 지금도 그 때의 곳간이 남아 있고, 구렁이가 은신하였던 구멍조차 있다고 전한다.
이 전설은 첫째, 탐착심에 수행정진을 게을리 하는 승려들에게 인과의 무서움과, 둘째, 육체는 멸하되, 영혼이 불멸한 가운데 반드시 업보에 따라 윤회전생이 있다는 것과, 셋째, 사제지간의 정은 이승과 저승을 초월하여 영원히 변치 않아야 한다는 교훈의 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법사는 승려의 인과법문을 마치자, 주장자를 높이 들어 법상을 쿵! 쿵! 쿵! 세 번 내리쳤다.
“시회대중이여, 이제, 세속인 뿐만 아니라, 승복을 입은 승려도 인과응보에는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는가? 오늘 법문은 승속이 모두 마음속에 새기어 모두가 항상 선인선과(善因善果)를 지어야 할 것이요, 필경에는 선인선과의 인연공덕으로 고해가 아닌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하여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즐거움을 누려야 할 것이로다. 시회대중을 위하여 금일 법사는 게송을 하나 소개하니 각기 참구하여 더욱 깨달음의 기쁨이 있을 지어다. ”
법사는 소리 높여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庭前有月 松無聲
뜰앞의 달은 있으나 /소나무는 그림자가 없고
欄外無風 竹有聲
난간밖에 바람은 없으나 / 대나무는 소리가 있도다




(2003년11월26,새벽1시, 남한강 강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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